행동경제학

복권을 사는 심리 – 기대효용 이론과 행동경제학의 차이

ad-jay 2025. 6. 27. 06:57

수학적으로는 손해인데 왜 우리는 복권을 살까?

복권을 사는 사람은 그 당첨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알고 있다. 대부분의 복권은 1등 당첨 확률이 수백만 분의 1에 불과하며, 기대 수익률은 실제 구매가보다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수많은 사람이 편의점에서 로또 용지를 사고, TV 앞에 앉아 당첨 결과를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희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혹시 몰라서 사본다”라고 한다.

복권을 사는 심리

이는 단순한 낭비일까, 아니면 인간 행동에 내재된 특정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일까? 전통 경제학은 이런 행동을 기대효용 이론(Expected Utility Theory) 을 통해 설명하려 한다. 이 이론은 사람들이 선택을 할 때, 각 가능한 결과의 효용과 그 발생 확률을 곱한 값을 비교하여 결정한다고 가정한다. 이론대로라면, 복권의 기대효용이 음수이므로 사람은 복권을 사지 않아야 맞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은 확률을 정확히 계산하지 않고, 이득보다 감정에 반응하며, 때로는 희망이라는 상징적 요소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글에서는 복권 구매라는 일상 속 선택을 중심으로, 기대효용 이론과 행동경제학의 관점 차이, 그리고 복권 구매에 내재된 심리적 편향들을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기대효용 이론 – 전통 경제학의 합리적 판단 기준

기대효용 이론은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로, 사람들이 선택을 할 때 결과의 가치(효용)와 그 결과가 일어날 확률을 곱한 값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선택이 50% 확률로 10만 원을 얻을 수 있다면 기대효용은 0.5 × 100,000 = 50,000이다.

 

이 수치보다 더 높은 기대효용을 가진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사람은 이론적으로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복권은 기대효용 이론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상품이다. 대한민국의 로또 6/45 기준으로 1등 당첨 확률은 약 814만 분의 1이다. 당첨금이 수십억 원에 이르더라도, 평균적인 기대 수익은 복권 한 장 가격(1,000원) 보다 현저히 낮다. 계산상으로 복권은 구매하면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다. 따라서 기대효용 이론이 맞다면, 이성적인 소비자는 복권을 절대 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복권 시장은 매년 수십조 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으며, 고소득자뿐 아니라 저소득자일수록 복권 구매 비율이 높은 경향도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은 기대효용 이론이 인간 행동을 현실적으로 완벽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사람은 숫자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확률을 왜곡하고, 감정적 가치를 효용으로 환산하며, 때로는 극히 낮은 가능성에도 ‘희망’이라는 감정적 효용을 더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행동경제학의 해석 – 감정, 희망, 확률왜곡이 만들어낸 선택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설명하려고 등장한 학문이다. 특히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 은 기대효용 이론의 대안으로 제시되며, 사람은 기대값이 아니라 ‘지각된 가치(perceived value)’와 심리적 기준점(reference point)에 따라 선택을 한다고 본다. 복권 구매는 전형적인 ‘확률 왜곡(probability distortion)’ 사례다. 사람은 1% 미만의 확률에 대해 그것을 실제보다 더 크고 현실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다.

 

즉, 0.000012%의 확률도 실제 감정상으로는 “혹시 될지도 몰라”라는 희망으로 인식된다. 또한, 복권은 단지 금전적 이득의 수단이 아니라, 심리적 보상의 도구다. “로또 1등 되면 뭐 하고 싶어?” 같은 상상을 하면서 현실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이러한 정서적 기대감(emotional utility) 은 전통 경제학의 수치 계산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복권은 일정한 확률로 당첨되거나 손실이 나는 구조지만, 사람의 뇌는 그것을 ‘무한한 가능성’으로 왜곡해 받아들인다.

 

특히 손실회피(loss aversion) 와도 연결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손실에 민감하며, 현실의 불만족을 극단적인 이득으로 극복하려는 충동이 크다. 복권은 이러한 심리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단돈 천 원이면 ‘현실 탈출’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감정은, 이성적으로 계산된 기대효용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한다.

 

 

복권 구매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비합리성과 인간다움의 경계

복권을 사는 행동은 기대효용 이론의 틀 안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경제적으로는 손해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한 계산기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복권 구매에는 심리적 만족, 감정적 회피, 사회적 상징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누군가에게는 복권이 단순한 숫자 놀이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일주일 동안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희망의 티켓일 수 있다.

 

행동경제학은 이런 인간의 비합리성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단순히 사람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심리적 가치 체계를 인정하는 관점이다. 복권은 또한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주변 사람도 사니까”, “언제 한번 터질지도 모르니까”라는 심리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와 군중심리의 산물이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감정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때로는 ‘손해 나는 선택’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복권 구매는 이익 극대화가 아닌, 감정 조절과 심리적 보상 극대화의 수단일 수 있다. 우리는 복권을 통해 단기적이지만 강렬한 기대감을 경험하고, 그것이 반복되며 소비 습관으로 이어진다. 복권을 사는 심리는 인간이 이성적 계산을 넘어 감정적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 사례이며, 행동경제학이 전통 경제학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현실적인 실험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