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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 실험 사례 5가지 – 우리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보여주는 증거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다

전통 경제학은 오랫동안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해 왔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선택은 논리보다는 감정에, 정보보다는 인지 편향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다룬 학문이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우리가 얼마나 자주, 그리고 일관되게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는지를 분석해왔다.

손실회피 성향을 보여주는 행동경제학 실험

이 글에서는 행동경제학을 대표하는 실험 중에서도 우리가 실제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의사결정 오류를 보여주는 5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실험들은 모두 실존하는 연구를 바탕으로 하며, 소비, 선택, 투자, 사회적 행동, 시간 지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놀라울 만큼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실험 사례 1~2 – 손실회피와 기본값 효과

 손실회피 실험 (전망이론, 카너먼 & 트버스키, 1979)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A안: 100% 확률로 3만 원을 얻는다

B안: 80% 확률로 4만 원을 얻고, 20% 확률로 0원

 

대부분의 사람들은 A안을 선택했다. 즉, 확실한 이익을 선호한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결과가 달라진다.

 

A안: 100% 확률로 3만 원을 잃는다

B안: 80% 확률로 4만 원을 잃고, 20% 확률로 0원

 

이 경우에는 대다수가 B안을 선택했다. 이는 같은 금액의 손실과 이익이 주어질 때, 손실을 더 강하게 회피하려는 경향(손실회피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기본값 설정 실험 (장기기증 동의율, 존슨 & 골드스타인, 2003)
유럽 국가들의 장기기증 등록률을 조사한 결과, 기본값이 어떻게 행동을 유도하는지 명확히 드러났다.

 

오스트리아, 벨기에: 장기기증 ‘자동 동의’ → 동의율 90% 이상

독일, 덴마크: 장기기증 ‘비동의가 기본값’ → 동의율 20% 미만

 

기본값(Default Option)을 바꾸는 것만으로 수백만 명의 행동이 달라진 것이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유지하는 선택’을 얼마나 강하게 따르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상태 유지 편향(Status Quo Bias)과도 연결된다.

 

 

 

실험 사례 3~5 – 프레이밍, 사회적 증거, 선택 마비

 프레이밍 효과 실험 (Tversky & Kahneman, 1981)
사람들에게 다음 두 시나리오 중 하나를 제시했다.

 

A안: 600명 중 200명이 확실히 살아남는다

B안: 600명 중 1/3 확률로 모두 생존, 2/3 확률로 전원 사망

 

다수는 A안을 선택했다. 하지만 같은 문제를 이렇게 바꾸면 결과가 뒤집힌다.

 

A안: 600명 중 400명이 확실히 죽는다

B안: 1/3 확률로 모두 생존, 2/3 확률로 전원 사망

 

이 경우, B안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표현 방식만 바뀌었을 뿐 실질 내용은 동일하지만, ‘생존’ vs ‘사망’이라는 언어적 차이가 사람의 판단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다.

 

사회적 증거 실험 (세금 납부 캠페인, 영국 정부 ‘넛지팀’, 2010)
세금 독촉장을 보낼 때, 단순한 문구 대신 “이 지역 납세자의 87%는 이미 세금을 냈습니다”라는 문장을 추가하자 납세율이 평균보다 15% 이상 상승했다. 이는 사회적 규범(social norm)이 개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선택의 역설 실험 (잼 실험, Iyengar & Lepper, 2000)
슈퍼마켓에서 시식 코너에 6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보다, 24종류를 진열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모였다. 그러나 실제 구매율은 6종류가 있을 때가 훨씬 높았다.
이는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결정하지 못하고 이탈한다는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실험이 주는 교훈 – 선택을 바꾸는 구조의 힘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대부분의 선택을 자동적으로, 즉 ‘시스템 1’에 의해 처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인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발생하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한 음식을 더 먹고 싶다면 냉장고 안에서 과일을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놓는 것이 넛지다. 돈을 아끼고 싶다면 지출 알림이 바로 오는 금융 앱을 설정하는 것 역시 환경 설계다.

 

이러한 방식은 직장, 교육, 마케팅, 공공정책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 가능하다. 실제로 기업은 가격 책정에서 마무리 가격 효과(예: 9,900원)를 활용하고, 앱 설계자들은 사용자의 클릭 경로를 넛지 구조로 설계한다. 정부는 ‘자동 등록제’를 통해 장기기증, 퇴직연금 참여율을 크게 높였으며, 병원에서는 손 씻기 유도를 위해 거울 앞에 소독제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위생 행동을 향상했다.

핵심은, 환경이 행동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조를 이해하면 우리는 의지를 덜 쓰면서도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행동경제학 실험들이 보여주는 건 ‘사람은 실수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람은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실수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실수의 패턴을 이용해 선택을 더 현명하게 설계할 수 있다. 즉, 똑똑해지려면 더 많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대신, 더 잘 설계된 선택지를 옆에 두는 것, 그것이 진짜 똑똑한 행동이다.

 

 

인간은 왜 반복해서 비합리적 선택을 할까? 행동경제학의 대표 실험 5가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실수하는지를 분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