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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으로 본 ‘퇴사 후 불안감’의 원인

퇴사는 자유일까, 또 다른 심리적 감옥일까?

많은 사람은 직장 생활 중 “언젠가는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한다. 상사의 눈치, 불합리한 조직 문화, 반복되는 야근과 스트레스는 탈출 욕구를 키운다. 그러나 막상 퇴사를 하고 나면 예상과 달리 ‘해방감’보다는 막막함과 불안감이 몰려온다. 하루하루가 느슨해지고, 지출은 줄지 않으며, 나만 뒤처지는 듯한 느낌은 오히려 정신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왜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퇴사에도 불안함을 느낄까? 단순히 돈이 없어서, 할 일이 없어서일까?

퇴사 후 불안감의 원인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퇴사 후 불안감이 단순한 현실 문제보다도, 뇌의 판단 체계와 심리적 편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퇴사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그 이후의 불안감은 비합리적인 사고 패턴, 인지 오류, 사회적 비교 편향에서 출발한다. 이 글에서는 행동경제학의 대표 개념들을 바탕으로 퇴사 후 겪게 되는 심리 구조를 분석하고, 그 불안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을지를 살펴본다.

 

 

 

손실회피 편향 – 자유를 얻고도 공포를 느끼는 이유

사람은 이득보다 손실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손실회피 편향(Loss Aversion)이라고 부른다. 퇴사는 새로운 기회와 자유를 얻는 이득이지만, 사람의 뇌는 오히려 잃어버린 것에 집중하게 된다. 고정 월급, 사회적 지위, 직장 동료와의 일상적 교류 같은 요소들은 퇴사 순간 ‘사라진 것들’이 되며, 뇌는 이를 손실로 인식한다. 비록 그것들이 원래 만족스럽지 않았더라도, 잃고 나면 그 가치는 커 보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손실에 대한 감정이 실제 생활의 어려움보다 훨씬 강한 불안을 만든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퇴사 직후에는 생활비 걱정보다도 “내가 지금 무책임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남들은 다 출근하는데 나만 집에 있어도 되는 걸까?”와 같은 심리적 손실 인식이 더 크게 작용한다.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감정이 합리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뇌가 손실에 과도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 본다. 결국, 퇴사 후의 불안은 ‘없는 현실’이 아니라, ‘손실로 느껴지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상태 의존성 – 상황이 바뀌면 감정이 흔들리는 이유

퇴사를 하면 생활의 모든 구조가 바뀐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회의나 이메일 확인도 필요 없다. 이 변화는 자유로움이지만 동시에 익숙한 시스템이 사라지는 심리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상태 의존성(State-Dependent Preferences)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순간의 환경과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 퇴사 전에는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퇴사 후에는 “그래도 누군가가 일정을 짜주던 게 편했나?”라는 반전된 감정을 느끼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상태 의존성은 자신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나아가 앞으로의 선택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진다. 퇴사 후 목표가 있었더라도, 환경이 바뀌면 그 목표마저 흐려지고, 무엇을 위해 퇴사했는지도 헷갈리게 된다. 사람은 항상 현재의 상태를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재 불안정한 상태가 과거의 결정을 후회하게 만드는 왜곡된 사고를 유도한다. 퇴사 직후 흔히 겪는 감정 기복과 무기력함은 이처럼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심리적 역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회적 비교 – 남들과 비교할수록 더 외로워지는 심리

사람은 본능적으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을 평가한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사회적 비교 편향(Social Comparison Bias)이라 한다. 퇴사 이후 불안감이 심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은 쉬고 있지만 남들은 계속 바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SNS에 올라오는 직장인의 출근 사진, 회의 인증샷, 명함 교체 게시물 등은 퇴사한 사람에게 더욱 강한 소외감과 열등감을 자극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교가 현실보다 왜곡된 기준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타인의 좋은 면만 보며 자신과 비교하고, 자신의 단점은 더 크게 느낀다. 이는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기준점 이동과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으로 설명된다. 퇴사 전에는 ‘나는 나의 길을 간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퇴사 후엔 비교 대상이 많아지면서 주관적인 자율성보다 객관적인 경쟁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심리적 변화가 생긴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불안감은 점점 강화된다. 이 비교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퇴사 후에도 지속적인 자기 검열과 부정적 정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넛지와 감정 설계 – 불안을 통제 가능한 구조로 바꿔라

행동경제학은 단순한 분석에 그치지 않고, 사람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Nudge)’ 전략을 제안한다. 퇴사 후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감정 자체를 억제하려 하기보다,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퇴사 후 일정을 기록하고, 퇴근 시간처럼 일정한 시간에 하루를 정리하는 루틴을 만들면, 뇌는 일상의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는 불안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퇴사 이후 경제적 불안을 줄이기 위해 짧은 기간 목표를 세우고 성취 경험을 쌓는 방식이 좋다. “3개월 안에 소득화 가능한 프로젝트 1개 완성”처럼 작고 구체적인 목표는, 막연한 불안보다 훨씬 통제 가능하다. 넛지는 이런 식으로 환경과 선택지를 의도적으로 조정하여, 비합리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전략이다. 퇴사 후 불안을 극복하려면 그 감정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인간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심리적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