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결정은 언제나 감정보다 복잡하다
직장인이 퇴사를 고민할 때 주변에서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그냥 나와”, “그래도 참고 버텨야지”, “사표는 감정적으로 쓰는 거 아니야.” 이 말들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감정적인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고는 며칠 후에 후회하기도 하며, 반대로 계속 미루다 결국 번아웃에 빠지기도 한다. 퇴사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정체성과 삶의 구조를 바꾸는 중대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도 사람들은 흔히 비합리적인 심리 구조에 따라 행동한다.
단순히 회사가 나쁘거나, 다른 조건이 좋아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뇌 속에 작동하는 인지적 편향들이 퇴사 결정을 유도하거나 방해한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 지점을 설명한다. 사람은 냉정하게 계산하지 않고, 감정, 기대, 손실 공포, 사회적 압력, 현재에 대한 과대평가에 따라 선택을 내린다.
이 글에서는 행동경제학의 대표적인 개념들을 바탕으로, 직장인들이 퇴사를 앞두고 어떤 심리 구조에 따라 판단하고 흔들리는지를 분석해 본다. 그리고 퇴사 결정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심리 설계 전략도 함께 제시한다.
손실 회피 편향 – 지금 그만두면 뭔가 잃는 것 같아서 계속 다닌다
퇴사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쉬움’과 ‘손해 본다는 느낌’이다. 사람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 ‘퇴직금’, ‘사내 평판’, ‘안정된 수입’ 등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퇴사를 미루게 된다.
특히 지금까지 버틴 시간과 노력을 잃는 것처럼 느끼는 매몰 비용 편향(Sunk Cost Fallacy)도 함께 작동한다. 이는 ‘지금까지 이만큼 참고 다녔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그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질 것 같다’는 심리다. 하지만 매몰 비용은 이미 회수할 수 없는 자원이며,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그 무게를 과도하게 느낀다. 이로 인해 비합리적인 ‘계속 다니기’ 결정이 정당화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편향이 자신도 모르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기회가 존재하더라도, 사람은 지금 상태를 벗어나는 걸 더 큰 손해처럼 느끼며, 결국 ‘더 나쁜 상태로 밀려갈 때까지 참고 버티는’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이는 단지 안정지향적인 성격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뇌가 손실에 과민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현 상태 유지 편향과 후회 회피 – ‘안전한 지금’에 머물고 싶다는 착각
사람은 변화 자체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현 상태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설명한다. 지금의 직장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만두는 결정은 매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상태는 익숙하고 예측 가능하지만, 퇴사 후의 상황은 불확실하고 통제 불가능해 보인다. 이로 인해 사람은 본능적으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선택을 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또 다른 심리는 후회 회피(Regret Aversion)다. 이는 ‘지금 퇴사했다가 나중에 더 후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다. 이 심리는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후회를 피하려고 현재 결정을 회피하게 만든다.
결국 사람은 변화에 따른 손실이나 후회를 피하기 위해, 현재의 불만족을 ‘그럭저럭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정당화하며 선택을 미룬다. 이는 논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미래의 후회라는 감정적 고통을 피하려는 회피 반응이다. 이처럼 직장인은 퇴사라는 변화를 앞두고, 현실보다 상상의 후회에 더 크게 흔들리며 선택을 유예하거나, 결국 다른 외부 요인에 의해 퇴사 결정을 하게 된다. 능동적인 퇴사 결정을 위해서는 내가 지금 머무는 이유가 정말 객관적인 분석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익숙함에 대한 심리적 집착인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 편향과 과도한 낙관 – ‘지금만 참자’가 반복되는 이유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나아질 거야”, “연말 인사만 보고 그만둘까?”라는 말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반복적으로 하는 자기 합리화다. 이는 현재 편향(Present Bias)과 낙관 편향(Optimism Bias)이 동시에 작용하는 전형적인 예다. 현재 편향은 사람이 미래의 고통보다 현재의 편안함에 더 집중하도록 만든다. 즉, 퇴사라는 큰 결정을 내리는 고통을 지금 당장은 회피하고 싶기 때문에, ‘나중에 생각하자’는 판단을 내린다.
여기에 낙관 편향이 더해지면 ‘지금 상황도 곧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되며, 이를 이유로 현실을 변화시키지 않게 된다. 특히 상사와의 갈등, 과도한 업무량, 불공정한 평가 등 구조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근거 없는 낙관이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문제는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변화의 고통보다는 현재의 안정감을 우선시하며 실질적인 행동을 미루게 된다. 이 심리 구조는 결국 퇴사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고, 급격한 감정 폭발이나 건강 악화 등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선택하게 만든다. 이처럼 퇴사 결정을 반복적으로 미루는 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심리적 구조가 선택을 회피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구조를 바꿔야 선택이 바뀐다 – 퇴사 결정의 심리 설계 전략
퇴사라는 중요한 결정을 합리적으로 내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설계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은 ‘선택을 잘하기 위한 방법’은 더 많이 고민하거나 더 많은 조언을 듣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성이 개입하지 못하게 구조를 먼저 만들어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퇴사 결정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평가 기준을 스스로 작성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지금 회사에 남을 이유 3가지와 떠나야 할 이유 3가지를 명확히 적어보고, 그것을 미래 관점에서 검토하는 ‘외부자 시선 기법’을 활용하면, 감정적 흐름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또한 ‘기한 없는 고민’은 가장 위험한 선택 회피 전략이다. 결정을 미룰수록 감정적 부하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판단 능력은 점점 흐려지게 된다. 따라서 행동경제학에서는 ‘프리커미트먼트 전략(Pre-commitment)’을 활용해 미리 마감일을 정하고, 일정 시점에는 반드시 결정을 내리도록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국 퇴사 결정을 잘 내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상황 분석 능력보다, 비합리적 감정을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기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감정은 언제나 선택에 영향을 주지만, 그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나’는 선택을 바꿀 수 있다. 퇴사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지만, 심리 구조를 이해하고 설계한다면 더 나은 선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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