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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과 함께하는 ‘덜 소비하는 삶’ 실험기

덜 쓰는 삶은 참는 것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덜 소비하는 삶은 언뜻 보면 단순한 절약 생활처럼 보인다. 소비를 줄이고, 충동을 억제하고, 꼭 필요한 것만 사는 ‘검소한 삶’이라는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으로 느껴지지만, 막상 실천은 생각보다 어렵다. 카드값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지만, 쇼핑앱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는 단지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 습관, 인지 편향, 사회적 압력 등 다양한 심리 구조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덜 소비하는 삶 실험기

행동경제학은 이 지점에서 매우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즉, 덜 소비하는 삶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 구조를 설계하고 무의식적 행동을 유도하는 환경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선 행동경제학의 메인 개념을 활용하여 실제 소비를 줄이기 위해 실험적 접근을 소개해 보도록 한다. 내가 직접 체험한 '소비 절제 실험’을 바탕으로, 어떤 심리 구조가 소비를 유도했는지, 무엇을 바꾸니 소비가 줄었는지를 행동경제학의 눈으로 풀어낸다. 결국 덜 쓰는 삶은 참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안 쓰게 할 것인가’를 설계하는 삶이었다.

 

 

 

소비는 감정과 편향의 연속이다 – 감정소비의 구조

내가 소비를 줄이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다. 매달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이번 달은 왜 이렇게 많이 썼지?’라는 자책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고 싶어서 산 것이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들어간 쇼핑몰, 업무 미팅 후의 자극적인 외식, 할인 기간이라는 이유로 사두고 쓰지 않은 화장품까지.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감정소비(Affective Consumption)라고 부르며, 감정 상태에 따라 비합리적인 구매가 일어나는 구조를 설명한다. 특히 현재 편향(Present Bias)은 미래보다 지금의 기분을 더 중요하게 만들고, 손실회피 편향(Loss Aversion)은 ‘지금 안 사면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착각을 강화한다. 나는 이 심리를 꺾기 위해 소비 욕구가 올라올 때마다 ‘지금 이 물건이 필요해서 사고 싶은 건가, 아니면 기분을 회복하기 위해 뭔가를 사는 건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구분만으로도 지출의 절반은 줄었다. 감정과 소비를 분리하는 작업은 단순한 절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행동경제학은 소비를 ‘기분의 반사작용’으로 바라보며, 이를 제어하기 위해선 ‘기분을 소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예: 기분이 안 좋을 때 무조건 산책부터 하는 습관을 만들자, 쇼핑앱 대신 감정 일기 앱을 첫 화면에 두자 등.

 

 

 

기본 설정값을 바꿔야 소비 습관이 바뀐다 – 넛지 전략의 활용

소비를 줄이기 위해 내가 두 번째로 바꾼 것은 ‘설정값’이었다.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배달앱을 열고, 자동 저장된 카드로 결제하며, 새벽배송 버튼을 누르던 루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비 패턴이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디폴트 효과(Default Effect)라고 설명한다. 즉, 사람은 기본값을 바꾸지 않으며, 주어진 흐름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자주 사용하는 앱의 바로가기를 없애고, 결제 카드 자동 저장 기능을 삭제했으며, 쇼핑몰 로그인을 일부러 번거롭게 바꿨다. 단순히 귀찮아졌을 뿐인데, 놀랍게도 소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처럼 소비를 막기 위해서는 의지보다는 구조를 먼저 바꿔야 한다. 넛지(Nudge) 전략은 이 지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사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사지 않게 되는 구조’를 만들면 의지의 부담 없이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예: 급여 계좌에서 생활비 계좌를 별도로 분리해 자동 이체를 설정하고, 소비 계좌에는 일정 금액만 남겨두는 식의 설계는 넛지의 대표적 활용이다.

 

나는 실험적으로 ‘한 달 카드 결제액 한도’를 앱으로 시각화하고, 결제할 때마다 그만큼 게이지가 줄어드는 디자인을 설정해 소비 경각심을 높였다. ‘쓸 수 있는 돈’보다 ‘쓰고 나면 아쉬운 것’을 보이게 하는 방식이 훨씬 강력한 행동 억제 요인이 된다. 행동경제학은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어떤 흐름 속에 있느냐가 행동을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비교 프레임의 전환 – 누구를 따라 소비하는가

소비를 줄이는 데 있어 가장 방해가 되는 심리는 ‘비교’였다. 친구가 새 가방을 샀을 때, SNS에서 누군가 비싼 식사를 올렸을 때, 나도 모르게 ‘나만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비교 편향(Social Comparison Bias)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절대적인 기준보다 상대적인 위치를 기준으로 만족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예: 내가 가진 물건은 부족하지 않지만, 남보다 작거나 덜 있어 보이면 만족감이 떨어지는 현상. 이 비교 심리를 줄이기 위해 나는 SNS 사용을 의도적으로 줄였고, 특히 소비 자랑이 많은 계정은 팔로우를 끊었다. 대신 ‘소비하지 않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콘텐츠를 꾸준히 보았다.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는 같은 소비도 어떤 맥락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덜 소비하는 것이 ‘못 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에 충실한 삶’이라는 프레임을 꾸준히 강화해야만 심리적 낙차가 줄어든다. 내가 스스로의 소비를 해석하는 언어를 바꾸기 시작하면서, 비교 욕구는 줄었고, 나의 소비 패턴은 점점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맞는 것인지’에 집중되었다. 이처럼 소비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기준의 명확화를 통해 절제와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소비를 줄이기 위한 ‘의사결정 회피’ 전략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했던 소비 절제 전략은 ‘결정을 줄이는 것’이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결정 회피 전략(Choice Avoidance Strategy)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때 인간의 뇌가 과부하를 느끼고, 결국 익숙하거나 감정적으로 유도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현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나는 일주일 단위로 구매할 수 있는 품목 수를 제한했고, ‘이번 주에 살 수 있는 것 목록’을 미리 정해두었다. 그렇게 하니 쇼핑몰에 들어가도, 기준 없는 소비가 줄었고, 뇌가 더 이상 ‘사도 되나?’를 판단하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었다. 매일 매번 결제 여부를 고민하는 대신, 미리 정해진 원칙 안에서만 소비하게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예: “월 1회 외식 / 일주일에 1건 비필수 소비 허용 / 의류 구매는 3개월에 한 번만” 등. 이는 단순한 룰이 아니라, 뇌의 인지 에너지를 절약하면서도 자율성을 유지하는 전략이었다.

 

행동경제학은 이런 구조적 접근이야말로 장기적 변화에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덜 소비하는 삶은 극단적인 절약이 아니라, 감정, 비교, 자동화된 습관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끊고,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바꾼 건 돈을 쓰는 손가락이 아니라, 소비로 향하는 무의식의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