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과 공공정책 – 정부는 어떻게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가

ad-jay 2025. 7. 4. 22:10

규제가 아닌 ‘설계’로 사람을 움직이는 시대

정부 정책이라고 하면 보통 규제, 세금, 벌금, 법률 같은 강제적인 수단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람의 행동을 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바꾸는 방식, 즉 행동경제학적 접근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넛지(Nudge)’ 이론이 있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언제, 왜, 어떻게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지를 연구하고, 그 특성을 고려한 정책 설계를 가능하게 만든다.

행동경제학을 활용한 정부 정책 넛지 사례

정부가 시민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꼭 법으로 금지하거나 돈을 걸 필요는 없다. 대신 선택의 구조(Choice Architecture)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른 결정을 내린다. 예를 들어, 장기 기증 제도에서 ‘기본값(Default)’을 ‘동의’로 설정하면, 별다른 강제 없이도 참여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이는 단순한 디테일의 차이가 전체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행동경제학이 공공정책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실제 사례는 무엇인지, 그리고 효과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정책 설계를 위해 정부가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를 상세히 살펴본다. 규제 중심에서 설계 중심으로 이동한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시민과 정부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행동경제학이 공공정책에 도입된 배경

행동경제학이 정책에 적용되기 시작한 대표적 계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다. 당시 정책의 실패 중 하나는 사람들이 ‘당연히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에 있었다. 이를 반성하며, 각국 정부는 실제 인간 행동에 기초한 ‘행동 기반 정책(behaviorally-informed policy)’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영국 정부의 행동통찰팀(Behavioural Insights Team, 일명 Nudge Unit)이다. 이 팀은 2010년 출범 이래 세금 납부, 에너지 절약, 건강 증진, 복지 신청, 범죄 예방 등 다양한 분야에 행동경제학을 적용해 왔다. 예를 들어, 세금 고지서에 “당신과 같은 지역의 87%가 이미 납부했습니다”라는 문장을 삽입하자, 납부율이 단기간에 15% 이상 증가했다. 이는 사회적 규범(Social Norm)을 활용한 대표적인 넛지 전략이다.

 

미국, 싱가포르,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등도 유사한 넛지팀을 설치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부처와 지자체에서 ‘행동설계 기반 행정’을 시도하고 있다. 정책의 목표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넛지의 실제 정책 적용 사례

1. 장기기증 기본값 변경 (오스트리아 vs 독일)
오스트리아는 장기기증을 ‘자동 동의’로 설정한 결과, 기증 동의율이 90% 이상이다. 반면, 독일은 ‘직접 신청’ 방식으로 운영되며, 기증 동의율이 20%에 못 미친다. 이는 기본값 효과(Default Effect)를 활용한 대표 사례다.

 

2. 에너지 절약 고지서 (미국 오파워 프로젝트)
전기요금 고지서에 이웃집보다 전기 사용량이 많다는 시각 자료를 넣은 것만으로도, 사용자들은 평균 2~4%의 전기 사용량을 줄였다. 이는 사회적 비교와 시각적 피드백을 이용한 넛지다.

 

3. 청소년 흡연 감소 캠페인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청소년 대상 흡연 예방 캠페인에서 공포 중심 메시지를 줄이고, “당신 또래 중 82%는 흡연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사회적 기준 중심 메시지를 활용해 흡연율을 효과적으로 낮췄다.

 

4. 구직자 행동 개선 (영국)
실업자들에게 단순히 ‘일자리를 구하라’고 안내하는 대신, ‘언제 어디서 구직 활동을 할지’ 구체적으로 메모하도록 유도했더니 실제 구직률이 15% 이상 향상됐다. 이는 계획 프레이밍(plan framing) 기반 개입이다.

이 외에도 백신 접종 독려, 장바구니에 채소 구역을 전면 배치하기, 음식 포장지 디자인 개선 등 다양한 정책 설계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활용되고 있다.

 

 

 

넛지의 윤리적 기준과 한계

넛지는 겉보기에 부드럽지만, 실은 매우 강력한 정책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넛지를 사용할 때는 정치적 중립성과 시민의 자율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사회적 행동을 유도하면서 의도적으로 특정 가치관이나 이념을 강화한다면, 이는 사실상 ‘심리적 조작’이 될 수 있다.

 

실제 사례로, 일부 국가에서는 장기기증 기본값을 '자동 동의'로 바꾸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사전 동의 없이 제도를 도입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무리 공익적 목적이라 해도, 당사자의 선택권을 사전에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넛지가 아닌, 일방적 결정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넛지와 슬러지의 차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슬러지를 정책 수단으로 남용할 가능성이다. 예: 복지 신청서를 일부러 복잡하게 구성하거나, 온라인 해지 경로를 지나치게 길게 설계하는 등의 행정 슬러지는 시민의 권리를 제약한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노령연금, 실업급여, 저소득층 지원금의 신청 과정을 어렵게 만들었던 사례들이 슬러지로 지적되었다. 이처럼 슬러지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어, 정책 대상자가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교묘한 방해 구조가 된다.

 

따라서 정부가 행동경제학을 공공정책에 도입하려면, 행동설계에 대한 민주적 감시 장치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시민은 넛지의 존재를 알아야 하고, 그 넛지가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유도하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영국의 일부 지방정부는 이러한 원칙을 반영해 ‘넛지 효과 공지’와 ‘선택 옵션 해제 기능’을 의무화한 사례도 있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 자율적 결정권을 존중하는 투명한 정책 설계의 방향을 보여준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를 보완하려는 매우 실용적인 학문이다. 하지만 그 실용성이 권력과 결합될 때는 더욱 신중하고 투명한 설계 원칙이 요구된다. 좋은 넛지는 시민의 자유를 존중하며, 나쁜 넛지는 시민의 눈을 피한다. 그렇기에 정책은 늘 묻고 확인해야 한다.
“이 선택은 시민이 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유도된 것인가?”

 

 

 

행동경제학은 이제 공공정책의 핵심 도구다. 넛지를 활용한 정부의 행동 설계 전략과 실제 사례, 윤리적 한계까지 한눈에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