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 실험으로 알아보는 선택의 비밀

ad-jay 2025. 7. 21. 09:29

인간의 선택은 정말 ‘합리적’일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의 선택을 한다. 작게는 점심 메뉴부터 크게는 진로, 재무, 인간관계까지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수많은 선택이 꼭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은 때때로 이익보다 감정을 따르고, 객관적 정보보다 ‘느낌’이나 ‘직관’에 의존해 결정을 내린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특히 다양한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어떠한 환경, 조건, 심리 요인에 따라 결정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입증해 왔다.

행동경제학으로 알아보는 선택의 비밀


즉, 인간의 선택은 그 사람이 얼마나 똑똑하냐 와 무관하게, 택지가 어떻게 제시되느냐, 그 순간의 감정은 어떤가, 기대와 비교 기준은 무엇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행동경제학의 대표적 실험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내리는 여러 가지 선택들이 얼마나 심리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고, 예측 가능할 정도로 왜곡되는지를 분석하도록 한다.


‘왜 나는 항상 비슷한 후회를 반복할까?’, ‘어떤 선택이 진짜 나에게 유리한 걸까?’ 그 해답은 데이터가 아니라, 뇌의 편향된 인식 구조 속에 숨어 있다.


프레이밍 효과 – 같은 선택, 다른 말투가 결정을 바꾼다

대표적인 행동경제학 실험 중 하나는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1980년대에 진행한 ‘생존 문제 실험’이다. 이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A 그룹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수술을 받으면 생존율이 90%입니다.”
B 그룹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수술을 받으면 사망률이 10%입니다.”

 

같은 정보이지만, 전자는 긍정적 프레임이고 후자는 부정적 프레임이다. 놀랍게도 긍정적 프레임을 들은 사람들은 수술을 선택할 확률이 훨씬 높았고, 부정적 표현을 들은 사람들은 수술을 기피했다. 이 실험은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의 대표적 사례로, 같은 선택지라도 표현 방식이 다르면 전혀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정보가 어떻게 포장돼 전달되는지에 따라 선택 방향이 좌우될 수 있다.

이 효과는 광고, 정치, 뉴스 제목, 소비자 마케팅 등 일상 거의 모든 선택 상황에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예: “80% 지방 제거” vs. “20% 지방 포함”
같은 제품이지만 후자가 더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선택은 사실의 내용보다, 그 사실을 바라보는 ‘틀’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디폴트 효과 – 선택하지 않아도 선택된 상태가 사람을 지배한다

한 국가 연구에서, 장기 기증 동의율에 큰 차이를 보이는 국가들이 있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문화, 교육 수준, 의료 시스템이 비슷함에도 장기 기증 동의율은 10%와 90%로 극명하게 달랐다.
그 차이는 단 하나, 기본값(Default Option)에 있었다. 독일은 ‘동의하지 않으면 기증이 되지 않는’ 방식(옵트인), 오스트리아는 ‘동의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증되는’ 방식(옵트아웃)을 택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선택지가 자동으로 설정돼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디폴트 효과(Default Effect)다. 사람들은 직접 선택하는 데 드는 에너지와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적용되는 기본값을 그대로 유지한다. 기업들이 보험 가입 시 ‘자동 연장’을 기본 설정으로 해두는 것도 같은 원리다. 실제로 자동 가입된 사람들은 해지보다는 유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디폴트 설정은 정부 정책, 소비자 계약, 금융 상품 등 사회 구조 전반에서 사람의 선택을 유도하는 가장 강력하고 은밀한 설계 수단이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진짜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는 결정,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설계된 구조’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을까?”


선택 과부하 실험 – 선택이 많을수록 결정이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보통 선택지가 많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험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쉬나 아이엔가는 슈퍼마켓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첫 번째 테이블에는 6종류의 잼을, 두 번째 테이블에는 24종류의 잼을 진열했다. 방문자들은 24종류의 잼이 있는 테이블에서 더 오래 머물렀지만, 실제로 구매로 이어진 비율은 6종류 테이블이 훨씬 높았다.

 

왜 그럴까?
선택지가 많을수록 사람은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게 최선일까?”, “다른 선택이 더 나은 건 아닐까?”라는 후회 회피 심리까지 작용하면서 결국 결정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이 실험은 쇼핑몰, 취업 선택, 진로 탐색, 데이팅 앱 등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결정 상황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무수한 선택지 속에 놓여 있지만, 실제로는 그로 인해 더 많은 스트레스와 만족도 저하를 경험한다. 따라서 좋은 선택을 위해서는 ‘선택지를 늘리는 것’보다 기준을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옵션을 줄이는 설계가 더 중요하다.


‘선택’의 비밀은 뇌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위 실험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명확하다.
사람의 선택은 이성이나 정보의 양이 아니라, 선택지가 주어지는 방식, 표현, 구조, 감정 상태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뇌는 ‘합리적 계산기’가 아니라 ‘감정적 필터’로 세상을 해석하며 반응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하면서도 결정 후 후회하거나,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인지적 편향의 결과다.


행동경제학의 실험들은 이런 선택 구조를 바꾸고, 보다 나은 결정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된다. 좋은 선택이란 ‘더 많이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 더 잘 설계된 환경 속에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광고 문구 하나, 자동 설정 하나, 선택지 개수 하나가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은밀하게 조종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나답게 선택하는 삶’을 원한다면, 선택지를 바꾸기 전에 나를 둘러싼 선택 환경부터 의심해야 한다.